1984 @George Orwell
Sanity is not statis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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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쥐, 너구리, 바퀴벌레처럼 송이버섯도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 있다. (중략) 송이버섯은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환경을 더 훼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하간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26p)

기대할 바가 줄어든 이 시대에 나는 많은 생물종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도, 정복하지도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교란에 기반한 생태를 찾고 있다. (28p)

 

이것이 우리가 아는 이야기다. 개척자와 진보 이야기, 그리고 ‘텅 빈’ 공간이 산업 자원을 지닌 장소로 탈바꿈한 이야기다. (중략)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다. 산업적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생계 터전을 잃고 풍경을 훼손하게 될 물거품 같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기록에 미처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쇠락의 결말로 마친다면 모든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약속과 붕괴가 거듭되는 다른 장소로 눈을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46-47p)

어떻게 모임은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이 되는가? 한 가지 답은 오염이다. 우리는 마주침을 통해 오염된다.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게 길을 열어줌에 따라 마주침이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63p)

 

모든 존재는 오염의 역사를 수반한다. 순수성은 선택지에 없다. 불안정성을 유념하는 태도가 갖는 한 가지 장점은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생존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63-64p)

그러나 생존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판타지를 살펴보면, 생존이란 항상 다른 존재와 싸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외계 행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존’은 정복과 팽창의 동의어다. 나는 생존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의미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 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협력이란 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64p)

 

그는 나의 연구팀을 어느 오래된 사찰 뒤에 있는, 한때 송이버섯 숲이 번창했던 곳으로 데려갔다. 이제는 인간이 심은 침엽수와 잎이 넓은 상록수가 빽빽하게 들어찬 그 산에 소나무라고는 죽어가는 몇 그루밖에 없었다. 송이버섯은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전에는 산비탈이 버섯으로 넘쳐났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송이버섯은 잃어버린 시간temps perdu의 냄새가 난다. (100-101p)

송이버섯 냄새는 기억과 역사를 둘러싸고 뒤엉키며, 비단 인간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냄새는 그 자체로 강력한 박진력을 가진 정동affect으로 가득한 매듭 속에 여러 존재 방식을 집합시킨다. 송이버섯 냄새는 마주침을 통해 발생했기에 우리에게 역사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송이버섯 냄새를 맡자. (106-107p)